장단유희 ep.10 미연 & 박재천 -그것을 꿈이라 말하지 말라
- So Ra Kim
- 2023년 10월 28일
- 5분 분량
최종 수정일: 4월 24일

[그것을 꿈이라 말하지 말라]
안개가 걷히듯 퍼지는 소리. 흔적 없이 사라진 발자국을 더듬는,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 먼 옛날부터 지금까지 깊은 땅 속에서 잠자던 리듬이 질굿 장단을 따라 세상 밖으로 나온다. 무질서한 시공간을 쪼개는 전설 같은 리듬과 선율. 혼성 듀오의 손길로 다듬어지는 혼합 박자가 시공을 에워싼다. 피아노와 드럼을 치는 손길로 꿈꾸던 세상의 문을 두드린다. 물 건너 온 악기에서 터져 나오는 장단의 생김새가 낯 선 듯 귀에 익다. 무율타악기로 만들어내는 음악은 음정이 없는 것 같지만, 실은 나름의 색깔은 물론 소리의 높낮이와 질감을 지닌다. 유율타악기인 피아노 선율로 그 섬세함을 그려내는 동안, 하나의 드럼으로 엮인 높고 낮은 음색이 맞물려 태동한다.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다가, 연주되는 순간에야 비로소 얼굴을 드러내는 즉흥음악. 서로의 소리를 눈으로 듣고 귀로 보면서 연주 패턴을 이해하고 호흡을 맞추는 순간. 시공을 채우는 화성과 리듬이 매순간 새롭다. 그러니 그 기록마저도 원테이크(one take)다. 같은 사람이 똑같은 시공간에서 똑같이 연주를 해도 때마다 다르다. 작곡된 대로 모방하려해도 주법을 쉬이 흉내낼 수 없으니, 가히 독보적이다. 순간의 감정이 녹아든 즉흥연주는 감수성만으로 탄생하는 것이 아니다. 탄탄한 연주력은 기본이고, 선율과 화성 뿐 아니라, 곡의 흐름과 장단의 구조를 냉철하게 이해하고 지독하게 연마한 다음에야 서로의 그림자 같은 합주와 교감이 가능하다. 곳곳에 겹가락을 싣고 폭포수 같은 에너지를 내뿜는 피아노 선율과 코리안 그립(Korean Grip)이란 독자적 주법이 내는 음색과 리듬. 아침이슬처럼 맺어 떨어지던 건반이 어느 새 파도처럼 세차게 일어난다. 빠르게 몰아갈수록 풍성해지는 리듬의 원류는 호남우도농악이다. 농악은 장단의 한 배만 맞으면, 얼마든지 변화무쌍하게 변주할 수 있다. 내고 달고 맺고 풀어내는, 다이나믹(dynamic) 한 힘의 원천을 서정(情)과 격정(激情)이 스민 연주곡으로 승화시킨 창작. 누구도 가보지 못한 길을 그저 예술혼을 따라 걷는다. 현대음악에서 한국의 장단이 꽃 피우도록 공들여온 여정(旅程)은 어쩌면 한민족의 피를 이은 예술가로서 사명(使命)이자 숙명(宿命)일지도 모른다. 한국 현대음악의 최전선에서, 음악적 선구자로 자리매김해온 미연&재천 듀오. 장르와 문화를 뛰어넘으며, 시대와 세대를 초월한 그들의 내공을 세간(世間)에서는 ‘아방가르드(avant-garde)’, ‘전위적(前衛的)’이라 부른다. 즉흥음악에 전념을 다해 자아(自我)의 초상을 그려온 세월. 동서양을 넘나드는 음악세계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필살기는 틀에 갇히지 않는 상상력과 자유로움에서 나온 것이다. 월드뮤직의 세계에 입성한 한국인의 리듬. 태평양 너머 머나먼 꿈, 이방인의 환상으로만 남는 꿈이 아니라, 태어나고 자란 제 땅을 딛고서 비로소 뿌리 내려 싹 틔운 꿈이다. 박혜영-
1999 데뷔
2005 1ST 앨범 [QUEEN & KING]
2008 2ND 앨범 [DREAMS FROM THE ANCESTOR]
제6회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최우수 크로스오버 앨범. 최우수 연주 앨범 2관왕 수상.
PIANO 미연 MIYEON
중앙대학교 작곡과 졸업
일본 SATOH MASAHIKO 재즈 이론 사사
김윤덕류 가야금 산조 원형 피아노 재현 및 한국전통 선율과 장단을 피아노연주의 어법에
적용하여 다채로운 화성과 현대적인 전위표현을 번갈아 가며 궁극적인 자유즉흥 연주.
PERCUSSIONIST 박재천PARK JE CHUN
중앙대학교 작곡과 졸업
한국의 전통음악(판소리,무속,사물가락) 및 20C 현대음악의 일련기법 연구 [KOREAN GRIP]
즉흥재즈 ORCHESTRA SMFM 창단
전주세계소리축제 집행위원장 역임
[장단톡톡] 박재천편은 ‘한국장단음악축제-장단유희’ 총감독이자 연희자인 김소라가
‘미연&박재천’ 듀오로 활동해 온 드러머와 나눈 이야기입니다. 한국의 장단을 활용한 창작음악을 만드는데 앞장서 온 연주자의 미적 경험과, 예술관을 공유합니다.
[미연&박재천 듀오의 결성]
김소라 선생님. 고생 많으셨습니다.
박재천 즐거웠지, 뭐.
김소라 장단유희 코너 속의 코너 장단톡톡이라고 있는데요. 이번 장단유희에 참여하시는 선생님들, 또 아티스트분들 소개를 하는 시간이 있어요.
박재천 네.
김소라 미연&박재천 듀오에 대해서 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박재천 그게 몇 년이더라? 뭐 꽤 오래 됐어요. 연주를 하러 다니는데 나나 미연이나 음악 성향이 특이하다 보니까 듀오로 활동을 하게 됐고, 우리 미연&박재천 듀오는 기존에 있는 클래식이라든가 전통음악 이런 것들을 모두 조금 비슷하게 경험을 하고 배운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 이상의 음악을 해보자고 쫓아다니다보니까 결국에는 즉흥까지 오게돼서 즉흥음악 듀오가 된 거죠.
[한국의 장단을 활용한 창작의 계기]
김소라 서양 음악을 전공하시고 또 드럼과 작곡을 전공하시고 장단을 활용한 음악 작업을 오랫동안 하셨어요. 계기가 있으셨는지 궁금합니다.
박재천 아, 이거는 어떤 계기라기보다는 음악가라면, 우리 음악 부분이 아니라 모든 장르의 예술가는 자기 조국, 자기 민족의 음악이나 문화 현상을 이해하지 못하는 거는 세 가지를 갖춰야 될 부분에서 반 이상이 날아가는 거예요. 그거 없이 어떤 화가도, 어떤 음악가도, 어떤 무슨 영화감독도, 어떤 문학가도 모든 장르에 자기의 민속에, 민족에 있었던, 유지해왔던 문화는 꼭 이해를 하고 가야 되는 덕목에 불과해요. 그것이 왜 국악을 했냐고 물어보면 이제는 그거는 굉장히 고루한 질문이 됐어요.
김소라 서양 음악에서 말하는 리듬. 한국 음악에서 이야기하는 장단이 있잖아요. 사실 같으면서도 다른 것 같고 저는 아직도 사실 잘 모르겠어요.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리듬과 장단은?

박재천 대한민국, 우리 대한민국의 장단이 분명히 다른 건 사실이에요. 그런데 이런 식의 리듬 구조를 쓰는 나라가 이건 타악의 전문가들이 하는 얘기인데 한국에 유일하게 있고 아프리카의 중부 대륙에서 이런 현상이 보인다고 해요. 그러니까 보통은 모든 리듬이 싱커페이션을 수반하고 있어요. 싱커페이션을 수반하지 않으면 리듬 구조를 만드는 데 굉장히 좀 뭐라고 할까. 단순해진다든가 복잡해질 수가 없는데 유일하게 아프리카 중부 지방에서 벌어지는 톱니바퀴 현상의 리듬 현상하고 우리 대한민국에 석삼, 대삼소삼이라는 말 있잖아요. 모든 박자를 한 박자로 보지만 안에서는 석삼이라는 세 박의 그루밍이 돌아가는 묘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에 그런 음악적인 특성도 분명히 있어요.
한국의 장단에 특성도 있는 건 특별하고 아마 지금도 싸우자면 싸울 수 있고 논하자면 논할 수 있는 사항 중에 하나가 인류에 사람이 만들어지고, 인류가 만들어지고 선율이 먼저냐, 리듬이 먼저냐는 건 지금도 계속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아마 두드리기를 먼저 시작하지 않았을까. 광물질이나 식물질 이런 걸 갖고 뭔가를 두들기다 보니까 이 리듬이 먼저가 생긴, 사인하기가 좋잖아요. 뭔가 쳐서. 아마 그래서 나는 리듬이 먼저일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는데 혹자는 또 이제 선율이 먼저라고 해서 뭔가 우리가 가진 보이스를 먼저 내기 시작해서 선율이 먼저 생겼다고 얘기를 하기 때문에 그만큼 리듬은 모든 음악의 근간이죠.

[장단의 미학]
김소라 재즈, 월드뮤직, 즉흥음악, 국악. 다양한 음악들 장르 중에서도 이제 정말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계세요. 전통 음악계를 봤을 때 급속도로 월드뮤직, 퓨전국악 어떤 다양한 음악 형태로 발전하고 있는데 혹시 그 안에서 먼저 이렇게 선례를 밟으셨던 연주자로서 아쉬운 점이나 조금 더 보강했으면 좋겠다는 개인적인 의견이 있으신지요?
박재천 우리뿐이 아니라 전 세계 모든 전통. 그러니까 트래디셔널(traditional)이라고 하는 것은 어디도, 언제라도 생각을 바꿔야 되는 것이 양식에만 의지를 하기 시작하면 시쳇말로 기득권이라는 것이 형성이 돼요. 내가 이 양식을 터득하고 이해했다, 배웠다, 할 줄 안다고 그치기 시작하면 전통이라는 것이 발전해나가는 모습이 보일 수가 없는데 다행히도 요즘 세대가 그것들을 양식에서 벗어나서 빨리 미학으로 접근을 해야 된다는 거예요. 우리의 음악이 이런 양식을 통해서 어떤 미학을 보여줄 거냐는 이 경계를 좀 빨리 넘어갔으면 좋겠는데 요즘은 다행히도 열린사회가 되고 열린 인터내셔널(international) 사회가 되면서 다행히도 많은 젊은 친구들이 미학을 쫓아가는 젊은 연주가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저는 굉장히 고무적인 현상이라고 생각을 해요.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양식의 이해를 가지고 자기의 평생의 음악의 원리로 삼는 것은 너무 고루하다. 양식을 배우고 이해한 가운데 이 양식이 발전할 수 있는 미학을 좀 바라봐 달라. 다행히도 지금 젊은이들은 많이 그런 부분들에 대해서 애를 쓰고 있어서 선배로서 너무나도 감사하고 고맙다.
[남기고 싶은 이야기]
김소라 이번에 장단유희 저희가 부제를 한국장단음악축제라고 붙였어요. 감사하게도 이렇게 라인업에 흔쾌히 참여해 주셨는데 전하고 싶은 메세지 라든지 혹은 연주하실 곡목에 대해서 잠깐 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박재천 우리 장단의 고유한, 아까 말씀드린 양식의 미학에서 미학으로 발전하면서 사실 지금도 많은 한국의 젊은 음악가들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지원해 주고 많은 학교와 교육기관이 생기고 각 지역별로 많은 보존 단체들이 있어서 굉장히 리듬에 강한 민족임에 틀림이 없는데 이것이 잘못 발달을 해서 자꾸 이제 뭐 트로트라든가 무슨 이런 쪽에, 대중적인 어떤 쪽에 빨리 내가 뭔가를 이익을 얻어야 된다는 것 때문에 그쪽으로 변질되는 것은 좀 불안한 마음이 좀 있어요. 그런 걸 볼 때 지금 우리가 장단만을 가지고도 많은 음악을 만들어내면서 이것이 우리의 고유한 어떤 테이스트라는 것을 조금 더 같이 알려나가는 과정에서 이런 축제를 만들고 또 이런 프로그램을 만든 것은 굉장히 고무적인, 응원을 해야 될 프로그램인 것 같아요.
김소라 정말 마지막 질문입니다. 박재천에게 드럼이란?
박재천 글쎄요. 뭐에 홀려서 드럼을 쳤는지. 아마 다른 종목들은 부모의 강요라든가 어떤 친구의 뭐, 어떤 영향력을 받는다든가 무슨 여러가지의 어떤 환경이 바뀌어서 자기가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부분들이 많이 있을 텐데 아마 예술 분야는 요즘 말로 뿅 가서 그냥 시작하는 거 아닌가. 이것은 강요로 될 수 없는 거고 배워서 되는 게 아니고 어느 순간에 나 이걸 해야 되겠다고 아마 다들 그렇게 다 시작을 했을 거예요. 우리 아버지가 장구를 치신 적도 없고 우리 엄마가 꽹과리 한번 쳐본 사람도 아닌데 어느 날 갑자기 나는 그냥 드럼 소리에 모든 것이 그냥 급하게 빨려 들어가면서 ‘나도 저거 해야지’라고 시작을 했기 때문에 그때나 지금이나 이게 나한테 뭔가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고 그저 늘 그냥 내 곁에 있어줘서 고마워요.
김소라 함께하는 것. 선생님 감사합니다.
박재천 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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