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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장단음악축제’를 연 ‘장단유희’ 총감독 김소라

최종 수정일: 2023년 12월 11일



[장구를 믿고, 함께 성장하다]

장구 하나를 믿고 의지하며, 30년 세월을 보낸 김소라. 장구와 함께 자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녀는 농악판의 장구잽이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김소라의 우도 설장구는 선반설장구의 정석처럼 짱짱해서 추임새가 절로 나온다. 탄력 있는 발디딤, 유연한 손발과 어깨짓, 고깔을 쓴 고개짓까지 자연스러우면서도 낭창한 몸짓이 일품이다. 몸집만한 장구를 매고 판굿을 뛰다보면 숨이 턱끝까지 차오르지만, 얼굴 찡그리는 일 한 번 없이 늘 태연한 미소로 일관했다. 스승 유지화 명인의 그늘에서, 어떤 훈련이나 훈계에도 끄떡없는 맷집을 키운 때였다. 대학에 진학하고 이십대를 보내면서, 앉은반 설장구는 물론, 삼도사물놀이, 경기도당굿가락, 동해안굿가락 등을 활용한 각양각색의 작품을 시도했다. 김소라의 주된 역할은 장구연주였지만, 작품을 창작할 때마다 컨셉과 구성은 물론 기획과 스토리텔링, 테크니컬라이더, 작품 소개, 의상과 분장, 무대 연출과 리허설까지 셋업을 위한 모든 과정을 감당해냈다.


[이국 땅에서 장단의 가치를 재발견하다]

계속 그렇게 지원사업에 충실하며 작품 활동을 해도 무리 없이 평탄할 것 같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그녀가 미국으로 떠났다는 소식이 들렸다. 새로움에 대한 갈망과 거침없는 과감한 도전의 시작이었다. 스물 아홉살이 되던 해에, 고국 땅 보다 더 넓고 열린 세상을 만났다. 시카고(Chicago)에서 레지던시를 진행하면서 여러 연주자들과 어울려 새로운 장르, 다양한 악기들과 만났다. 그 때마다 장구라는 악기는 소리와 음색, 독주 악기로서 존재감을 발휘했다. 재즈, 일렉트릭, 현대음악, 오디오비주얼 등과 얼마든지 조화를 이뤄내는 유연함과 융통성이 장구의 강점이었다. 장구가 지닌 매력과 한국인의 리듬을 무기로 삼아 솔리스트로서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것을 몸소 확인했다. 한국 장단의 독특함과 독보적 가치를 새삼스레 재발견 했다고나 할까.


[한국의 장단으로 즉흥음악의 문을 두드리다]

월드뮤지션계의 드럼연주자로 평생을 바친 박재천과의 만남은 장구연주자 김소라에게 새로운 돌파구를 안겨주었다. 한국의 장단 악기로서 장구가 아니라, 온갖 리듬을 다스리는 타악기로서 장구와의 기싸움이 시작되었다. 그녀가 유지화와의 만남을 통해 농악의 속성과 면모를 습득했다면, 박재천과의 만남에서는 음악의 원류와 악기의 본질을 탐구하는 자세를 보고, 듣고, 익혔다. 머리로 음악적 양식을 이해하는 것을 넘어서서, 몸으로 기예를 갈고 닦는데 그치지 않고, 그 너머에 자유로운 표현의 세계에 다다라야 한다는 신념이 강해지기 시작했다. 그럴수록 더 악착같이 서양의 리듬 체계를 이해하고, 장단을 요리할 줄 아는 역량을 키우는데 집중했다. 박재천은 스승이자 선배로서 지혜로운 이야기를 아끼지 않았다. 그는 창작음악에서 장단이 왜 필요하며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악기가 지닌 본질적인 특징을 바탕으로 연주의 한계를 어떻게 극복하고, 새로운 영역을 어떻게 넓혀갈지를 고민하게끔 만들었다. 그녀가 리드믹한 즉흥음악에 빠져들수록, 음악을 듣고 해석하는 눈과 귀도 넓어졌다. 틀에 갇히지 않으려는 용기와 도전 정신, 지혜로운 안목을 높여갔다.



[연희자에서 프로듀서로, 기획자이자 감독으로 서다]

장단유희라는 프로그램의 기획과 개발은 우연히 이뤄진 것이 아니다. 세계음악 시장에서 한국음악이 드러낼 수 있는 특징이 무엇인지, 그 속에서 장단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국내에 과연 타악 솔로 음악이 얼마나 존재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선행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장단음악축제’를 추진하고, 연주를 통해 한국 장단음악의 가능성을 짚으면서 그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김소라라는 이름을 걸고 도전해온 모든 경험이 스스로의 자산이 되었다, 그녀는 신진연희자를 발굴하고, 작품의 제목을 정하거나, 장단을 구성하거나 즉흥 연주를 해내는 원리와 방법, 악기를 편성하는 요령 등을 아낌없이 알려주었다. 온오프라인 공연의 구성과 활용 방안, 촬영 컨셉과 진행에 이르기까지 그녀가 손수 행하지 않는 것이 없었다. 촬영장의 소품을 나르거나, 스텝들의 움직임, 연주자의 컨디션을 체크하는 섬세함 속에 진솔함이 묻어났다. 프로듀서이자 감독으로 전체 업무를 총괄하면서도, 전혀 으스대거나 우쭐대지 않았다. 아주 작은 일마저도 손수 행하려는 마음가짐. 모든 것을 보조하면서, 겸손하게 옛 스승을 대하는 태도로 일관하는 모습은 적잖은 감동을 안겨주었다. 한국음악계에서, 여성타악연희자가 세계 곳곳을 누비는 독주자로 활약하는 것도 드문 일이지만, 연희자이면서 프로듀서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기획의 첫 단추부터 공연의 마무리까지 책임지고, 게다가 ‘축제’라는 이름을 걸고 크고 작은 행사를 추진하며, 감독으로 활약하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 아닐까 싶다.


[‘한국장단음악축제-장단유희’의 미래를 꿈꾸다]

폴란드의 글로벌티가 페스티벌,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여바 부에나 가든 페스티벌, 필라델피아 포크 페스티벌, 시카고 월드뮤직 페스티벌, 토론토 우먼 인 퍼커션 페스티벌, 영국 워메드 페스티벌 등 셀 수 없이 많은 축제가 해마다 펼쳐진다. 김소라는 장구를 벗 삼아 세계를 유랑하며 각양각색의 페스티벌에 참가해온 이력의 소유자다. 그러면서 지구촌 곳곳에서 한국 장단의 남다른 가치와 존재감을 재확인했다. 장구 하나를 믿고 시작한 세계여행의 마지막 종착지는, 바로 한국이다. 그런데 막상 한국에서, 한국인의 리듬이 중심이 되는 축제를 선뜻 떠올리기가 쉽지 않다. 그런 와중에 김소라는 세계인과 즐길 수 있는 장단축제를 상상하며, 그 서막을 ‘장단유희’라는 이름으로 열었다. 그녀가 세계 곳곳에서 만난 친구들은 그녀의 예술적 성장을 지켜봐온 동료이면서, 동시에 예술적 교류가 가능한 네크워크를 형성하는 문화매개자이기도 하다. 당차게 세계를 누비며 맺은 귀한 인연들이, 한국장단음악축제의 가능성을 넓혀주는 밑거름이 되리라 믿는다. 축제를 통한 한국 장단의 세계화, 그 미래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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